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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호이저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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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탄호이저》(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로, 1845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여러 차례 개정하여 드레스덴판, 파리판, 빈판 등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탄호이저는 13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음유시인 탄호이저가 관능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비너스베르크에서 쾌락을 즐기다 속세로 돌아와 겪는 갈등과 구원을 그린다. 오페라는 탄호이저 전설과 바르트부르크 가요 대회 전설을 바탕으로 하며, 주요 아리아로는 "Dich, teure Halle", "O! du mein holder Abendster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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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호이저 (오페라)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작품 종류오페라
원어 제목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
로마자 표기Tannhäuser
작곡가리하르트 바그너
대본가리하르트 바그너
원작리하르트 바그너
언어독일어
초연일1845년 10월 19일
초연 장소드레스덴 왕립 극장
바이로이트의 막스 브뤼크너와 오트홀트 브뤼크너의 3막 디자인
바이로이트의 막스와 오트홀트 브뤼크너의 3막 디자인
음악 듣기"드레스덴판 플레이리스트" - 워너 클래식스 제공 유튜브 아트 트랙, 클라우스 케니히 (탄호이저), 루치아 팝 (엘리자베트), 베른트 바이클 (볼프람), 발트라우트 마이어 (베누스), 쿠르트 몰 (헤르만), 지크프리트 예루살렘 (발터), 월튼 그뢴로스 (비테롤프), 가브리엘레 지마 (양치기) 외.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바이에른 방송 합창단
"파리판(빈판) 플레이리스트" - 유니버설 뮤직 그룹 제공 유튜브 아트 트랙, 르네 콜로 (탄호이저), 헬가 데르네슈 (엘리자베트), 빅터 브라운 (볼프람), 크리스타 루드비히 (베누스), 한스 조틴 (헤르만), 베르너 홀베크 (발터), 만프레드 융비르트 (비테롤프) 외. 게오르그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 극장 합창단
영상 보기"Tannhäuser Richard Wagner" - 루마니아 국립 클루지나포카 오페라 극장 공식 유튜브

2. 작곡 및 초연

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de는 1843년에서 1845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1845년 10월 19일 드레스덴 궁정 극장에서 바그너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33] 1861년 3월 13일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파리 판"으로도 초연되었다.

바그너는 1843년 여름 테플리체 휴가 중에 작곡을 시작하여 1845년 4월 13일에 악보를 완성했다. 유명한 서곡은 종종 독립적인 연주곡으로 연주되며, 마지막으로 작곡되었다. 바그너는 비너스베르크 동굴 음악을 작곡하는 동안 너무 열정적이어서 병이 들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많은 고통과 노력으로 ''비너스베르크'' 음악의 첫 윤곽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동안 흥분과 뇌로의 혈류 급증으로 매우 괴로웠습니다. 병들었다고 생각하고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초연 당시 바그너의 친구였던 작곡가 페르디난트 힐러가 공연 준비를 위한 음악 작업을 지원했다. 엘리자베트 역은 바그너의 조카인 요하나 바그너가 맡았다. 바그너는 원래 10월 13일, 요하나의 19번째 생일에 오페라를 초연할 계획이었으나, 요하나가 아파서 6일 연기되었다. 비너스 역은 빌헬미네 슈뢰더데브리엔트가, 탄호이저 역은 요제프 티차체크가 맡았다.

《탄호이저》는 《리엔치》만큼 성공적이지 못했고, 바그너는 거의 즉시 결말을 수정하기 시작하여 1846년과 1847년까지 악보를 수정했다. 1847년 드레스덴에서의 첫 재공연을 위해 그는 마지막 막에서 비너스가 탄호이저를 유혹하는 장면을 명확히 하고, 이 막에서 순례자 합창을 보컬로 추가했다(이전에는 오케스트라만 연주했다). 1860년 출판을 위해 개정된 이 버전은 일반적으로 "드레스덴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란츠 리스트가 1849년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이 오페라를 제작한 후, 1852년부터 1856년까지 슈베린, 카셀, 포즈난, 비스바덴, 하노버, 뮌헨, 베를린 등 여러 지역에서 공연되었다. 드레스덴 버전은 독일 이외 지역의 초기 공연에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1853년 1월 18일 리가, 1854년 1월 10일 탈린, 1854년 11월 25일 프라하의 빈 극장, 1859년 4월 4일 뉴욕의 슈타트 극장, 그리고 1876년 5월 6일 런던의 코번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이탈리아어로 공연)에서 공연되었다.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 포스터


바그너는 1861년 파리 오페라의 특별 공연을 위해 오페라를 상당히 수정했다. 이는 프랑스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의 부인인 파울리네 폰 메테르니히 공주의 제안에 따라 나폴레옹 3세 황제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 개정판은 현재 ''탄호이저''의 "파리 버전"으로 알려진 것의 기초를 이룬다.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은 1861년 3월 13일 파리 오페라의 살레 르 펠레티에에서 이루어졌다. 작곡가는 준비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했으며 164회의 리허설이 있었다. 초연에서 오페라는 처음에는 호평을 받았지만, 2막부터 야유와 고함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3막이 끝날 무렵에는 두드러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1막에 발레가 나오면 공연 시작부터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 일정을 방해했기 때문에) 부유하고 귀족적인 조키 클럽 회원들이 반대한 것이 원인이었다. 또 다른 소란의 원인은 메테르니히 공주와 그녀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 대한 불만이었다. 3월 24일 세 번째 공연(바그너는 참석하지 않았다)에서 소란으로 인해 최대 15분씩 여러 차례 공연이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바그너는 세 번째 공연 후 오페라를 철회했다.

"파리" 버전의 프랑스 이외 지역 첫 공연은 1872년 11월 7일 볼로냐의 볼로냐 코무날레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공연). 이 버전의 미국과 영국 초연은 각각 1889년 1월 30일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1895년 7월 15일 런던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3]

한국 초연은 1979년 11월 12일,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이루어졌으며, 홍연택이 지휘하고 한스 하르트레트가 연출, 프레드 마르티니가 안무를 맡았다.[33]

3. 버전 정보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여러 차례 개정하여 다양한 버전을 남겼다. 주요 버전은 다음과 같다.


  • 1845년 드레스덴 초연 악보 ('''드레스덴판''')
  • 1860년 악보 (메이저 출판, 1847년부터 1852년에 걸쳐 이루어진 종결부 개정 부분 포함)
  • 오페라 공연용 1861년 악보 ('''파리판''')
  • 바그너 감수 1875년 빈 악보 ('''빈판''')


1845년 초연 당시 관객들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여 바그너는 개정을 하였다.[5] 초연은 1845년 10월 19일 드레스덴의 젠퍼 오페라에서 바그너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뛰어난 가수를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반응은 냉담했는데, 이는 《리엔치》와 같은 작품을 기대했던 대다수의 관객들이 신작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7]

"파리판" 초연은 1861년 3월 13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바그너는 1861년 파리 오페라의 특별 공연을 위해 오페라를 상당히 수정했는데, 이는 나폴레옹 3세 황제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3. 1. 드레스덴 판 (1845년)

1845년 드레스덴 초연에서는 제3막 종막 부분에서 베누스가 나타나지 않고, 엘리자베트의 죽음도 암시에 머물러 있어, 결말이 청중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악평을 받았다.[5] 바그너도 그 점을 자각하고 있어, 상연 후 곧바로 개정에 착수했다. 1847년에 엘리자베트의 시신과 베누스를 등장시켜, 탄호이저의 구제를 강조하는 형태로 고쳐 썼다. 이 제2고가 오늘날 '드레스덴 판'으로 공연된다. 연주회 등에서 연주되는 「탄호이저 서곡」은 일반적으로 이 드레스덴 판의 서곡을 가리킨다.

3. 2. 파리 판 (1861년)

1859년 바그너나폴레옹 3세로부터 『탄호이저』 상연 칙명을 받았다.[8] 이에 바그너는 대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음악에도 개정을 가했다. 주요 개정 내용은 제1막 서두의 베누스베르크 부분을 개정하여 “바카날”이라 칭하는 발레 음악을 추가하고, 제2막의 노래 경연 장면에서 발터의 아리아를 삭제한 것이다.

바카날 추가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그랑 오페라 관행에 따라 발레 삽입을 극장 측이 상연 조건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파리에서의 성공을 위해 이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제2막이 아닌 제1막에 발레를 삽입했다. 그러나 이는 춤꾼을 보기 위해 제2막부터 오는 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당시의 정치적 대립과 얽혀 방해 공작으로까지 발전하여 상연 3일 만에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했다.[10] 이 대실패와 스캔들은 오히려 바그너에 대한 주목을 끌었고, 프랑스 음악계와 문단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때 사용된 판이 좁은 의미의 “파리 판”이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서곡은 아직 오페라 본편으로부터 분리된 형태였다. 파리 판은 170회 이상의 연습을 거친 것으로도 유명하며, 「보체크」의 150회나 「봄의 제전」의 120회보다 훨씬 많다.

개정을 통해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의, 더욱 색채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담겼지만, 이는 『탄호이저』 작곡 당시의 음악과 양식적 불일치를 가져오기도 했다. 바그너는 이후에도 작품에 계속 손을 대어 1867년에는 뮌헨에서 대본을 독일어로 재번역하여 상연했다.

3. 3. 빈 판 (1875년)

1875년 공연에서는 서곡에서 1막의 바카날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형태(서곡 289마디부터 바카날이 시작됨)를 취하도록 했다.[5] 이것이 오늘날 소위 "파리 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빈 판"이라고 불러야 하며, 실제로 신전집판에서는 "빈 판"으로 앞의 "파리 판"과 구분하고 있다.

바그너 자신은 최종판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개정 작업에 착수하려고 했다. 아내 코지마의 일기에는 1883년, 사망 전달에도 "아직 이 세상에 탄호이저라는 빚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4. 악기 편성

Tannhäuserde의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무대 뒤 별도로 호른 8대와 트럼펫 3대가 편성된다.

5. 연주 시간

드레스덴 판의 연주 시간은 서곡 15분, 1막 51분, 2막 1시간 10분, 3막 54분이다. 빈 판의 연주 시간은 서곡 10분, 1막 1시간이며 총 연주 시간은 약 3시간 10분이다.[1]

6. 등장인물

지휘: 리하르트 바그너개정판(파리)
1861년 3월 13일 초연 출연진
지휘: 피에르-루이 디에슈탄호이저, 민네징거, 하인리히로 알려짐테너요제프 티차체크알베르트 니만엘리자베트 공주, 방백의 조카소프라노요하나 바그너마리 사세비너스, 사랑의 여신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빌헬미네 슈뢰더-데브리엔트포르투나타 테데스코볼프람 폰 에센바흐, 민네징거바리톤안톤 미터부르처모렐리헤르만, 튀링겐의 방백베이스게오르크 빌헬름 데트머카조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민네징거테너막스 슐로스에임비테롤프, 민네징거베이스요한 미하엘 벡터쿨롱하인리히 데어 슈라이버, 민네징거테너안톤 쿠르티쾨니히라인마르 폰 츠베터, 민네징거베이스칼 리세프레레젊은 목동소프라노안나 티엘레르부네 명의 귀족 시종소프라노, 알토귀족들, 기사들, 숙녀들, 순례자들, 세이렌들, 나이아드들, 요정들, 바카날리아; 파리 버전에서는 세 그레이스, 청년들, 큐피드들, 사티로스들, 그리고 파우누스



리브레토와 악보는 모두 제목 인물과 관련된 무대 지시 사항이나 그가 부르는 부분을 나타낼 때 '탄호이저'라는 단일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 이름은 리브레토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탄호이저를 이름으로 부르는 각 인물은 그의 이름인 하인리히(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를 사용한다.

하인리히 데어 슈라이버는 독립적인 인물로, 다른 모든 이름이 있는 인물들과는 구별되는 많은 선율과 때때로 독특한 가사를 부른다. 그러나 리브레토에서 그를 포함하는 앙상블 넘버는 ''리터''(즉, "기사들", 모든 기사 계급을 공유하는 ''민네징거''를 가리킴)로 표시되어 인물 목록에서만 개별적으로 언급된다. 쉬르머 판의 악보는 그의 선율 라인을 간단히 "슈라이버"라고 표시한다.

7. 줄거리

중세 독일에서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음유시인으로 노래하는 풍습이 있었다. 기사 중 한 명인 탄호이저는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의 친척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을 원하게 되어 색욕을 다스리는 이교의 여신 베누스가 산다는 이계 베누스베르크로 가서 그곳에서 육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베누스베르크에서 쾌락의 나날을 보내던 탄호이저는 꿈속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돌아가고 싶어 했다. 베누스에게 강하게 붙잡혀 베누스를 찬양하는 노래('''「베누스 찬가」''')를 불렀지만, 이곳을 떠날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계속해서 붙잡는 베누스에게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탄호이저는 베누스베르크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계에서 탈출한 곳은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근처의 계곡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로마 순례단의 기도 소리가 들리고, 탄호이저도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곳에 영주 헤르만과 절친한 친구 볼프람을 비롯한 기사들이 지나갔다. 모두 도망쳤던 탄호이저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지만, 탄호이저는 베누스베르크라고 말하지 않고 "멀리 갔었다"고 애매하게 답했다.

볼프람 등과 함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온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와 재회하여 서로 기뻐한다. 그날은 마침 가요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노래 주제는 「사랑의 본질」이었다. 볼프람과 다른 기사들이 여성에 대한 봉사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데 반해, 탄호이저는 자유롭고 관능적인 사랑을 주장하여 관중의 반감을 샀고, 마침내 「베누스 찬가」를 불렀다.[1] 격분한 기사들이 탄호이저에게 몰려드는 가운데,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감싸고, 영주에게 그의 죄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정신을 차린 탄호이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를 추방하고, 로마에 순례를 가서 교황의 용서를 받으면 돌아와도 좋다고 말했다.[1]

엘리자베트는 매일 탄호이저가 용서받고 돌아오도록 성모 마리아상에 기도를 올렸다. 마침 로마에서 순례단이 돌아왔다. 용서받은 순례단이 신을 찬양하는 ('''순례의 합창''') 중에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의 모습을 찾았지만, 순례단 안에는 그가 없었다. 탄호이저가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엘리자베트는 자신의 죽음으로 탄호이저의 용서를 얻으려고 결심했다.[1]

깊은 생각에 잠긴 볼프람('''저녁별의 노래''') 앞에, 초라한 모습의 탄호이저가 나타났다. 로마에 다녀왔느냐고 묻는 볼프람에게 그는 순례의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로마 이야기'''). 탄호이저는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로마에 도착하여 교황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교황은 "죄가 너무 무겁다"며 그를 용서하지 않고, "이 지팡이가 다시 푸르게 싹을 틔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며 파문을 선고했다고 말했다. 절망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베르크로 돌아가려고 방황하다가 볼프람을 만난 것이었다.[1]

탄호이저의 부름에 응답하여 베누스베르크가 눈앞에 나타나고, 베누스가 손짓했다. 베누스에게 끌려가는 탄호이저를 볼프람은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때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나타났다. 탄호이저는 정신을 차리고, 저승은 사라졌다.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 탄호이저의 용서를 신에게 간구했다는 것을 볼프람이 이야기하자,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의 시신 옆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침 그곳에 로마에서 온 행렬이 푸르게 싹을 틔운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도착하여, 특사가 내려왔다는 것을 알리고 막이 내렸다.[1]

7. 1. 1막

중세 독일에서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음유시인으로 노래하는 풍습이 있었다. 기사 중 한 명인 탄호이저는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의 친척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을 원하게 되어 색욕을 다스리는 이교의 여신 베누스가 산다는 이계 베누스베르크로 가서 그곳에서 육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베누스베르크에서 쾌락의 나날을 보내던 탄호이저는 꿈속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 베누스에게 강하게 붙잡혀 베누스를 찬양하는 노래('''「베누스 찬가」''')를 불러 보지만, 이곳을 떠날 결심은 더욱 굳어진다. 여전히 붙잡는 베누스에게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탄호이저는 베누스베르크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계에서 탈출한 곳은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근처의 계곡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로마 순례단의 기도 소리가 들리고, 탄호이저도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곳에 영주 헤르만과 절친한 친구 폴프람을 비롯한 기사들이 지나간다. 모두 도망쳤던 탄호이저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만, 탄호이저는 베누스베르크라고 말하지 않고 "멀리 갔었다"고 애매하게 답한다.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오라는 모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능의 세계에 빠져든 죄의 무게를 자각하는 탄호이저는 일단 거절한다. 그러나 "엘리자베트가 계속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폴프람의 설득을 받아들여 탄호이저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7. 2. 2막

바르트부르크 성의 민네징거 홀에서 2막이 시작된다.

1장에서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가 떠난 이후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그의 노래가 둘 모두를 되살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기쁘게 노래한다. Dich, teure Halle, grüss ich wieder|사랑하는 홀이여, 다시 당신을 맞이하오de. 볼프람이 탄호이저를 홀로 데려온다.

2장에서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의 발치에 쓰러지며 O Fürstin!|오 공주님!de이라고 외친다. 엘리자베트는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만, 탄호이저는 대답을 피한다. 이후 그녀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그를 맞이하고 Ich preise dieses Wunder aus meines Herzens Tiefe!|내 마음 깊이에서 이 기적을 찬양하노라!de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둘은 "게프리젠 자이 디 슈툰데"(이 시간을 찬양하라) 이중창을 함께 부른다.

3장에서 방백이 들어와 엘리자베트와 포옹하며 그녀의 회복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다. Dich treff ich hier in dieser Halle|이 홀에서 당신을 만나다니de 그리고 그녀가 주재할 곧 다가올 노래 경연을 알리며 dass du des Festes Fürstin seist|당신이 축제의 공주가 되시리라de라고 말한다.

4장에서는 엘리자베트와 방백이 손님들의 도착을 지켜본다. 손님들은 Freudig begrüssen wir die edle Halle|기쁨으로 우리는 고귀한 홀을 맞이하오de를 노래하며 반원형으로 자리를 잡고, 엘리자베트와 방백은 앞자리의 명예석에 앉는다. 방백은 경연과 주제(Könnt ihr der Liebe Wesen mir ergründen?|당신은 사랑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가?de)를 발표하고, 상금은 우승자가 엘리자베트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컵에 넣고, 엘리자베트는 첫 번째 가수인 볼프람을 뽑는다. 볼프람은 궁정적 연애의 노래를 부르고 박수갈채를 받지만, 탄호이저는 그의 열정 부족을 비난한다. 혼란이 일어나고, 비테롤프는 그를 신성 모독으로 고발하며 Frauenehr und hohe Tugend|여성의 명예와 고귀한 덕de에 대해 말한다. 탄호이저가 비테롤프를 조롱하자 기사들은 칼을 뽑지만, 방백이 개입하여 질서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탄호이저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일어서서 비너스에 대한 황홀한 사랑의 노래(Dir Göttin der Liebe, soll mein Lied ertönen|사랑의 여신이시여, 제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소서de)를 부른다.

탄호이저가 비너스베르크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포가 감돈다. 엘리자베트를 제외한 여자들은 도망치고, 기사들과 방백은 탄호이저에게 사형을 선고하려 한다. 엘리자베트는 "할테타인!"(멈춰!)이라고 외치며 탄호이저를 감싸고 그를 구하며, 죄인이 속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엘리자베트를 천사로 칭송하며 "아인 엔겔 슈티크 아우스 리히템 에터"(밝은 에테르에서 천사가 내려왔다)라고 외치자 탄호이저는 쓰러진다. 그는 속죄를 구하고, 방백은 그를 추방하여 젊은 순례자 무리에 합류하도록 명령한다. 모두 "나흐 롬!"(로마로!)을 외치며 떠난다.

중세 독일에서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음유시인으로 노래하는 풍습이 있었다.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을 원하게 되어 비너스베르크로 가서 육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볼프람 등과 함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온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와 재회하여 서로 기뻐한다.

이날은 가요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노래 주제는 「사랑의 본질」이었다. 볼프람과 다른 기사들이 여성에 대한 봉사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데 반해, 탄호이저는 자유롭고 관능적인 사랑을 주장하여 관중의 반감을 사고, 마침내 「비너스 찬가」를 부른다. 격분한 기사들이 탄호이저에게 몰려드는 가운데,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감싸고, 영주에게 그의 죄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정신을 차린 탄호이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를 추방하고, 로마에 순례를 가서 교황의 용서를 받으면 돌아와도 좋다고 말한다.[1]

7. 3. 3막

오케스트라 음악은 탄호이저의 순례를 묘사한다. 저녁 무렵, 볼프람은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탄호이저가 속죄받지 못했을까 걱정한다. 멀리서 순례자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고, 엘리자베트는 행렬 속에서 탄호이저를 찾지만, 그는 없었다("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자베트는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듯한 기도를 올린다("전능하신 성모여! 나의 간청을 들어주소서!").

어둠이 짙어지자, 혼자 남은 볼프람은 저녁별에 대한 찬송가를 부른다("죽음의 예감처럼 황혼이 대지를 뒤덮네…오 나의 아름다운 저녁별이여").

밤이 되자, 초라하고 수척한 모습의 탄호이저가 나타난다. 울프람은 탄호이저에게 순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탄호이저는 회개와 고통에 대해 노래하며("내 마음속의 열정은 어떤 참회자도 알지 못할 정도다"), 로마에서 교황 우르바노 4세에게 죄를 고백했지만 저주받았다고 말한다("너는 이제 영원히 저주받았다!"). 교황은 "내 손에 있는 이 지팡이가 다시는 푸른 잎을 달지 못하는 것처럼, 지옥의 뜨거운 불에서 너에게 구원은 결코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에게 돌아가겠다고 부르짖고, 비너스가 나타나 그를 환영한다("어서 와, 배신자여!"). 울프람은 탄호이저를 붙잡고 "엘리자베트!"라고 외친다. 그 순간, 횃불과 함께 장례식 찬송가가 들려오고("이제 떠난 영혼에게 경의를"), 울프람은 엘리자베트의 죽음 속에 탄호이저의 구원이 있음을 깨닫는다("하인리히, 당신은 구원받았소!"). 비너스는 사라지고, 엘리자베트의 시신을 운구하는 행렬이 나타난다. 탄호이저는 "거룩한 엘리자베트여, 저를 위해 기도해주소서!"라고 말하며 죽는다. 젊은 순례자들이 새싹이 돋아난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와 기적을 선포하고("만세! 만세! 은총의 기적이여, 만세!"), 모두가 "은총의 구원은 참회자에게 주어지니, 그는 이제 천국의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구나!"라고 노래한다.[1]

중세 독일,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을 원해 비너스베르크로 떠났다. 엘리자베트는 매일 탄호이저의 용서를 기도했고, 로마에서 돌아온 순례단에 그가 없자 자신의 죽음으로 탄호이저의 용서를 빌기로 결심한다.

볼프람의 '''저녁별의 노래''' 앞에 나타난 탄호이저는 로마에서 교황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파문당했다고 '''로마 이야기'''한다. 절망한 탄호이저는 베누스베르크로 돌아가려 하고, 베누스가 나타나 그를 유혹한다. 볼프람이 필사적으로 탄호이저를 붙잡는 순간,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나타난다.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깨닫고 숨을 거둔다. 로마에서 온 행렬이 푸르게 싹을 틔운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도착하여, 특사가 내려왔음을 알린다.[1]

8. 소재가 된 전설

『탄호이저』는 「탄호이저 전설」과 「바르트부르크 가요 대회 전설」, 이 두 가지 전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바그너는 1838년에 출판된 루카스(Ch. Th. L. Lucas)의 『바르트부르크 가요 대회』를 참고했다.[20]

13세기 초, 독일 아이제나흐의 투링겐 계곡 방백들은 빌란트부르크 주변 지역을 다스렸다. 그들은 예술, 특히 음악과 시의 후원자였으며, 빌란트부르크에서 민네징어 경연 대회를 열었다. 계곡 맞은편에는 베누스베르크가 있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 안에는 봄의 여신 홀다가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홀다는 이교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동일시되었고, 그녀의 동굴은 세이렌과 요정들의 거처가 되었다. 사람들은 여신이 빌란트부르크의 민네징어 기사들을 유혹하여 아름다움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탄호이저)이라는 민네징어 기사는 동료들과의 불화로 1년 전 투링겐 방백의 궁정을 떠났고, 이후 베누스베르크 동굴에서 비너스의 포로가 되었다.[21][22][23][24][25]

8. 1. 탄호이저 전설

탄호이저(Tannhäuser|탄호이저de, 1205년경~1267년경)는 바벤베르크 가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2세를 섬겼던 실존 인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21] 그는 전설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었다.[21] 마네세 사본에는 오른쪽 가슴에 검은색 십자가 표식이 있는 흰 가운을 입은 독일 기사단원(Deutschordensritter)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22]

15세기 전설에 따르면, 탄호이저는 성적 쾌락을 얻고자 베누스의 동굴에 약 1년간 머물렀지만, 후회하고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4세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교황은 마른 나무 지팡이에 잎이 나지 않는 한 구제할 수 없다고 말했고, 슬픔에 잠긴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의 동굴로 돌아간다. 훗날 교황의 지팡이에 싹이 돋아나 탄호이저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23]

8. 2. 바르트부르크 가요 대회 전설

바르트부르크 가요 대회 전설은 1206년, 폴프람 폰 에센바흐의 후원자였던 튀링겐 변경백 헤르만 1세의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열린 여섯 명의 뛰어난 시인과 가수들의 가요 대회이다. 그림 형제의 『독일 전설집』에 따르면, 귀족들 중 누가 가장 뛰어난지를 노래로 겨루어 패배한 자는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다.[24]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은 변경백을 "가장 관대한"이라고 칭한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에게 패하여 궁지에 몰렸는데, 하인리히는 오스트리아 공작을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변경백비의 중재로 사형을 면한 하인리히는 헝가리의 점성술사이자 흑마술사이기도 했던 클링조르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머쥐려 하지만, 클링조르조차도 폴프람을 꺾을 수 없었다. 하인리히의 그 후 운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아이제나흐에 도착한 클링조르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그날 밤 헝가리 왕에게 딸이 태어났으며, 그녀는 장성하여 변경백의 아들과 결혼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변경백은 그것을 듣고 기뻐했다는 성 엘리자베트 전설과 관련된 삽화도 있다.[24] 마네세 사본에는 이와 관련된 노래와 그림이 실려 있다.[25]

참조

[1] 웹사이트 Wagner's Tannhäuser https://www.theguard[...] 2010-12-11
[2] 서적 Richard Wagner and the Centrality of Love https://books.google[...] Boydell & Brewer Ltd
[3] 웹사이트 Tannhäuser: Performance History http://opera.stanfor[...] Stanford University 2015-11-03
[4] 뉴스 Nazi-themed Wagner opera cancelled in Dusseldorf https://www.bbc.co.u[...] 2013-05-09
[5] 서적 新グローヴ オペラ事典
[6] 서적 作曲家・人と作品 ワーグナー
[7] 간행물 CD解説書
[8] 간행물 CD解説書
[9] 간행물 CD解説書
[10] 간행물 CD解説書
[11] 서적 増井 (2003)
[12] 서적 増井 (2003)
[13] 서적 増井 (2003)
[14] 서적 増井 (2003)
[15] 서적 増井 (2003)
[16] 서적 増井 (2003)
[17] 웹사이트 公演情報 - 藤原義江歌劇團第23回公演 《タンホイザー》 http://opera.tosei-s[...] 昭和音楽大学オペラ研究所 オペラ情報センター 2015-08-03
[18] 서적 増井 (2003)
[19] 웹사이트 関西音楽史のなかの大阪音楽大学 http://www.daion.ac.[...] 大阪音楽大学 2016-03-29
[20] 서적 Wolfram von Eschenbach. Dichter der ritterlichen Welt. Leben, Werke, Nachruhm Schwabe
[21] 서적 Lexikon des Mittelalters LexMA Verlag
[22] 서적 Manessische Liederhandschrift. Vierzig Miniaturen und Gedichte Edition Stuttgart im VS Verlagshaus Stuttgart
[23] 서적 Deutsche Sagen Diederichs
[24] 서적 Deutsche Sagen Diederichs
[25] 서적 Manessische Liederhandschrift. Vierzig Miniaturen und Gedichte Edition Stuttgart im VS Verlagshaus Stuttgart
[26] 웹사이트 IMSLPの楽譜、Overture to the opera ''Tanhäuser'' http://v.mirror.imsl[...] 2022-04-23
[27] 서적 〈大作曲家〉 リスト 音楽之友社
[28] 웹사이트 IMSLPの楽譜、Tanhäuser Arragé à 4 mains http://conquest.imsl[...] 2022-04-23
[29] 음반 Wagner Highlights BISレコード
[30] 웹사이트 IMSLPの楽譜、Der Venusberg http://conquest.imsl[...] 2022-04-23
[31] 웹사이트 IMSLPの楽譜、Tanhäuser Einzug der Gäste auf Wartwurg http://conquest.imsl[...] 2022-04-23
[32] 웹사이트 IMSLPの楽譜、Operatic Masterpieces, Vol.4 http://conquest.imsl[...] 2022-04-23
[33] 뉴스 매일경제 197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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